오뚜기 마요네즈

마요네스 시장에서 80% 이상의 높은 시장 점유율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오뚜기의 비결은 한마디로 품질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다.오뚜기는 서구화돼 가는 식생활의 동반자가 될 마요네스 제품을 1972년 6월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자체 기술과 노력으로 상품화에는 성공했지만 초기에는 생산량보다 반품량이 더 많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1년여만에 품질은 안정됐지만 곧바로 강력한 경쟁자의 도전을 받게 됐다.당시 오뚜기보다 외형이 7배나 큰 서울식품이 대대적인 광고를 실시하며 도전해 온 것.이때 오뚜기로는 정면대응보다는 선발업체라는 이미지를 살려 확고한 영업조직에 바탕을 둔 밀어내기(Push) 전략으로 시장확대에 힘을 기울였다.결국 품질면에서 뛰어난 오뚜기 제품이 양사의 경쟁으로 확대된 시장수요를 대부분 흡수했다.이후 1980년에 롯데삼강, 1981년 한국크노르가 제품을 출시하며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특히 한국크노르는 베스트푸드 마요네스로 잘 알려진 세계 최대의 마요네스 생산업체인 CPC인터내셔널이 국내 대표적 조미료업체인 미원과 함께 설립한 회사.한국크노르는 탄탄한 자본력에다 막강한 영업력으로 시장점유율을 35%까지 끌어올렸다.특히 여론선도층이 많이 살고 있는 강남 일대에 크노르 선호경향이 뚜렸했다.이에따라 수동적인 방어자세를 취했던 오뚜기는 가감없는 여론을 수렴한 결과 소비자들이 고소한 맛의 마요네스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오뚜기 골드 마요네스'라는 신제품을 출시하며 능동적인 판촉공세로 대반격에 나섰다.한국크노르는 제품의 영문표기를 병기하는 등 광고와 판촉전략에서 국제적 이미지를 동원하려고 한데 반해 오뚜기는 우리 자본으로 만든 고유 상표임을 부각시켰다.또 1984년 4월부터 한달간 1주일 간격으로 중앙일간지를 통해 시리즈 광고를 집중적으로 실시하자 사태가 반전되기 시작했다.영업현장에서는 '진열이 곧 판매다'라는 슬로건아래 이른바 좋은 매대에 제품을 진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펼쳤다.또한 잘 팔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진열된 제품수를 늘리는데도 안간힘을 썼다.이처럼 제품 유통 가격 프로모션 등 이른바 4P의 모든 마케팅 수단을 동원, 판촉활동을 펼친 결과 전체 시장이 커졌고 한국크노르와의 경쟁에서도 앞서게 됐다.이후 한국 크노르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포기했으며 1996년 한국시장에서 철수했다.거대 다국적 기업이 시장장악에 실패해 철수한 흔치 않은 사례를 오뚜기 마요네스가 만들어낸 것이다.또 1994년에는 동원산업, 다음해에는 해표 유니레버 등이 마요네스 시장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오랫동안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오뚜기의 아성은 여전히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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