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디즈니의 사전마케팅

83년 4월에 문을 연 일본의 동경 디즈니랜드는 월트디즈니사(Walt Disney Company,WDC) 최초의 본격적인 해외사업이다.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자 WDC는 자연스럽게 유럽을 다음 목표로 정한다. 80년대에 유로디즈니(Euro Disney)를 기획할 때만 해도 이 사업은 거의 보증수표처럼 보였다.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는 유럽인들은 여가활용에 돈을 많이 쓰고 있었고, 유럽에는 디즈니가 계획하고 있는 정도로 큰 테마공원이 아직 없었다. 게다가 디즈니라는 상표가 유럽의 구석구석까지 잘 알려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월트디즈니는 유럽의 200개 이상의 장소를 검토한 뒤 파리의 동쪽 약 30km에 위치한 마르느-라-발레(Marne-la-Vall  e)라는 곳에 대규모의 테마공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것을 관리할 유로디즈니라는 회사를 85년에 설립한다. 이것은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큰 사업이니만큼 회사로서는 철저한 사전마케팅을 통해 실패의 확률을 최대한으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유로디즈니는 면밀한 사전마케팅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다.

유로디즈니의 사전마케팅계획

 

유로디즈니를 개장함에 있어서 회사측이 사전마케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 유럽에 새로운 테마공원이 생긴다는 것을 널리 알린다.

–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로디즈니를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    다.

– 유로디즈니를 아주 매력적인 직장으로 자리매김시킨다.

 

이러한 사전마케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회사는 아래와 같은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 공원을 열기 일 년전에 이미 사전마케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는 의도적으로 공원의 성립과정을 마케팅프로그램의 내용에 포함한다.

– 곧 있을 유로디즈니의 개장을 사회적인 큰 사건으로 부각시킴으로써 유럽    에 대규모의 테마공원이 들어선다는 것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 사실상 공동마케팅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스폰서’들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언론매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 아래의 세가지 원천에서 거둘 수 있는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다.

  ·기존의 디즈니제품과 유로디즈니의 광고

  ·공동마케팅의 파트너들이 행하는 광고와 유로디즈니

  ·언론매체와 유로디즈니

회사는 400억원 이상을 사전마케팅예산으로 책정하였는데, 그 중 약 1/4만을 광고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즉 대부분의 예산을 PR, 판매촉진, 이벤트 등으로 돌리고 이것들을 솜씨있게 잘 통합하여 큰 효과를 올리려고 한 것이다. 또한 개장 후에는 광고비만 약 500억원을 쓸 예정이었다.이러한 유로디즈니의 사전마케팅계획은 20명으로 이루어진 내부의 특별팀에서 마련하였는데, 그 시행은 주로 각 나라의 광고대행사 및 언론매체를 통해 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유로디즈니는 미국에서의 여러 가지 경험을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사전마케팅의 시행

약 1년에 걸친 유로디즈니의 사전마케팅은 특히 92년 초부터 개장일인 4월 12일까지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이것은 물론 모든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가족시장에 중점을 두었다. 유럽에서도 아이들은 유로디즈니를 방문하도록 그들의 부모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회사는 유로디즈니가 개장할 때까지 유럽 각국의 13개 TV채널을 통해 매주 ‘디즈니클럽’이라는 30분짜리 어린이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이 프로그램이 나갈 때마다 유럽의 어린이들에게 테마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 곳에 꼭 한 번 올 것을 권유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유로디즈니는 또한 코닥(Kodak), 네슬레(Nestl  ), 코카콜라(Coca-Cola), 필립스(Philips), 에쏘(Esso), 프랑스 텔레콤(France Telecom), IBM, 르노(Renault) 등의 유명회사들에게 이들이 유럽내에서 디즈니의 로고 및 상징인물들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 대신 이 회사들은 매년 상당액의 사용료를 유로디즈니에게 지불하고, 광고를 할 때나 제품의 겉포장에 ‘유로디즈니’라는 이름을 언급 또는 명기해야만 했다. 이러한 일종의 공동마케팅이 양쪽에게 모두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유로디즈니는 각 나라에 프로모션 사무실을 열고 이들을 통해 뉴스가 될만한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끊임없이 공급했다. 예를 들어, 방콕과 일본에 테마공원을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든가 하는 등의 이야기를 언론에 흘렸던 것이다. 언론계로서는 이것이 프로젝트의 규모로 봐서는 유럽 역사상 유로터널 다음의 큰 공사이므로, 유로디즈니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다루었던 것이다. 회사는 또 일부구간의 공사가 끝날 때마다 언론계인사들을 대거 초청하여 언론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정보센터(Info-Center)는 160명의 저널리스트들이 보는 앞에서 개장하였으며, 1991년 4월에는 1600명의 저널리스트와 26개 TV방송국대표들을 불러놓고, 92년 4월 12일의 개장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사를 가졌다. 홍보활동의 절정은 92년 1월부터 4월의 개장까지 계속된 이른바 목표시장 성(城)돌기(Target Market Castle Tour)였다. 이것은 40명의 디즈니직원과 6개의 보급텐트로 이루어진 디즈니일행이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벨지움·영국·이태리의 16개 도시를 돌면서 각 도시의 중심광장에 4일간 축소해서 만든 디즈니성을 설치하고 홍보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이 행사는 유럽 각지에 유로디즈니를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채용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디즈니일행이 가는 곳마다 매일 10,000∼25,000명의 방문객이 행사장을 찾았으며, 현지언론도 대대적으로 디즈니의 이 특이한 행사를 보도하였다.

 

유로디즈니는 또한 1991년 7월 유럽에서 500명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모든 기업에게 편지를 보내 요술왕국클럽(Magic Kingdom Club)의 회원이 될 것을 권유하였다. 이 클럽은 미국에서 이미 30,000명의 기업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기업이 이 클럽에 가입하면 스스로 임명하는 클럽간사를 통해 관심있는 종업원들에게 회원카드를 나누어준다. 이것을 가진 사람은 유로디즈니에 들어갈 때 상당한 할인을 받게 되어있다. 이것을 통해 회사는 직장에서 유로디즈니가 화젯거리가 되고, 또한 기업들이 유로디즈니를 단체관광의 목적지로 정할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유로디즈니는 또 개장 9주 전에 약 100억원의 돈을 들여 유로디즈니의 개장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광고를 유럽 전역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광고를 보고 문의를 해온 약 120만명의 고객들에게는 디즈니소개책자가 발송되었으며, 이들의 주소는 훗날 데이타베이스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잘 기록·저장되었다.코카콜라나 네슬레같은 스폰서회사는 자사의 마케팅활동에 디즈니와의 관계를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각종 사전마케팅활동으로 말미암아 유럽에서는 유로디즈니에 대한 기대가 부풀대로 부풀어져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개장 전날에는 3500명의 저널리스트를 포함하여 약 15,000명의 손님을 모신 전야제가 화려하게 거행되었다. 이 행사는 영국·독일·프랑스·이태리·스페인 그리고 미국의 TV방송국에서 생중계하였으며, 그 시청률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

 

개장 후의 결과 

유로디즈니의 개장 후 일년 동안 이 곳을 찾은 방문객의 수는 목표치인 1,100만 명을 능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4년에는 이미 3억 2천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고, 방문객의 수는 93년에 비해 10%나 줄었으며,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WDC는 채권은행단의 도움을 받는 것 외에 경영진을 유럽인으로 대거 교체하고, 과감한 원가절감조치를 취하였으며, 가격ㆍ제품 등의 마케팅측면에서도 변화를 일으켰다. 그 결과 95년에 처음으로 약 2천만 달러의 이익을 내는 등 사정은 조금 나아지고 있다. 이러한 경영개선 성과를 보면 그동안 유로디즈니가 고전한 것은 유럽에서 대규모의 테마공원을 운영한다는 아이디어가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 잘못이 있었던 것같다.WDC의 가장 큰 실수는 유로디즈니를 직접 소유하고 경영할 뿐만 아니라 주변이 넓은 땅을 사들여서 그것을 대대적으로 개발하려고 한 것이었다. 애초에 디즈니가 그러한 계획을 세운 것은 일본에서의 뼈아픈 경험 때문이었다. 즉 동경 디즈니랜드가 엄청난 돈을 벌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일본투자가들의 소유이기 때문에 디즈니는 약간의 로열티만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영업이익을 직접 챙기겠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사업이 잘되면 주변의 부동산값이 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리 땅을 확보하고 호텔ㆍ상가 등을 세운 다음 그것을 나중에 비싼 값으로 팔아 넘길 계획이었다. 그러나 걸프전이 관광산업과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자, 디즈니는 일단 개발계획을 축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방문객들은 미국에서보다 공원안에서 돈을 적게 썼다. 그들은 비싼 음식보다는 패스트푸드를 즐겼으며, 기념품도 많이 안 샀다. 게다가 2-3일 동안 묵으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에 호텔 방은 언제나 남아돌았다. 계절간의 차이도 예상보다 훨씬 컸다. 즉 하루의 내방객수가 성수기에는 9만 명에 이르고 겨울에는 1만 명밖에 안됐다.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93년에 유로디즈니 사장으로 부임한 프랑스인 필립 부르기뇽(Phillippe Bourguignon)의 과제였다. 부르기뇽은 채권은행단 및 본사와의 지루한 협상 끝에 이자 및 로열티의 지불을 당분가 유예시키는데 성공한다.이어서 부르기뇽 사장은 곧 마케팅에 손을 댄다.  유로디즈니는 처음에 유럽을 한 나라로 취급하고 미국에서 성공한 마케팅기법을 유럽전체에 그대로 적용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관광객들의 취향이 미국과 다르고, 또 유럽내에서도 나라마다 서로 크게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또한 입장료가 최대고객집단인 프랑스인들에게 너무 비싸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래서 부르기뇽은 우선 광고부터 유럽인들에게 맞게 바꾼다.  원래 유로디즈니의 광고캠페인은 어린이들을 겨냥하였으며, 미국에서 했던대로 대체로 미키나 플루토가 공원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나 탈것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부르기뇽은 이것을 어른들이 자녀들의 간청을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광고로 바꾼다.  유로디즈니는 또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마케팅활동을 펴기 위하여 런던,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브뤼셀, 암스테르담, 마드리드에 마케팅사무소를 연다.  그러나 부르기뇽이 내린 가장 과감한 결정은 성수기때의 어른입장료 250프랑을 195프랑으로 20퍼센트 이상 내리고, 제일 싼 호텔방의 숙박비를  { 1} over {3 }  이상 낮춘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겨울에 고객들을 끌기 위한 갖가지 방안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  디즈니는 일단 디즈니랜드 파리(공원의 이름을 이렇게 바꿨음)에 한번 왔던 사람은 다시 올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한 명의 방문객이 평균 18명한테 디즈니랜드를 추천한다는 조사결과도 갖고 있다.  따라서 우선 손님들을 공원에 오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디즈니랜드처럼 고정비가 큰 서비스산업에서는 방문객의 수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유로디즈니가 앞으로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애초에 WDC가 가졌던 그러한 꿈은 글자 그대로 꿈이었다.  그러나 95년도의 내방객수가 1,070만 명에 이르고, 호텔의 숙박률이 93년의 51%에서 95년에는 68%로 오르는 등 경영성과는 뚜렷이 나아지고 있다.  또한 생산성의 향상으로 손님 한 사람당 비용이 거의 20%나 떨어졌다고 한다.  부르기뇽은 2년에 걸쳐 일주일에 두 번씩 종업원들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는 종업원들의 사기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디즈니랜드 파리를 개선할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아이디어를 상당수 얻을 수 있었다.여러 가지 의미에서 디즈니의 가장 훌륭한 업적은 종업원들을 늘 웃게 만든 것이었다.  손님들이 디즈니랜드에서 얻는 것은 어떤 물체가 아니고 즐거움 또는 재미라는 이름의 경험이요 추억이다.  따라서 그러한 경험ㆍ추억을 파는 서비스회사의 종업원들은 절대로 우울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회사가 파산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유로디즈니의 종업원들이 어린이들에게 계속 미소를 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시련이 닥쳤을 때 그들이 웃으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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